작품 활동

오마이 뉴스 시평

예당 조선윤 2010. 4. 5. 17:22

꽃이 되어 향기를 날리고 싶다
[서평] 조선윤 시집 <사는 건 꿈이래>
09.06.26 15:15 ㅣ최종 업데이트 09.06.26 15:15 김수종 (kimdaisuke)

시인 조선윤의 시집<사는 건 꿈이래>(이지출판)에 실린 여러 시들은 전반적으로 깔끔하다. 아니 '눈이 부시도록 하얀' 배꽃 같다. 그리고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바람에 일렁이는 파란 보리밭이 떠오르듯 아련한 그리움과 눈앞이 확 트이는 것 같은 청량감이 교차한다.

    

   
▲ 사는 건 꿈이래 조선윤 시집 <사는 건 꿈이래>
ⓒ 이지출판
사는 건 꿈이래

청학봉의 불일폭포/지리산 팔경 중에 으뜸이라/구층탑의 웅장한 기상/고색창연한 자태로세/진감선사 태공탑비/사산 비명으로 손꼽히네//화계동열 맑은 계곡/벚꽃 길 장관일세/꽃대궐 속으로 가는 봄길에/환상의 꽃구름 뒤덮여/탄성 절로 터지네//섬진강 맑은 물 위/연분홍 꽃눈이 흩날리고/벚꽃 찾은 나그네 발길 아쉬워라/덧없이 애착만 만기고 가니/몇 날 동안 남아서 가슴의 빛으로 남을까/쌍계사의 봄은 가네.           -쌍계사의 봄(전문)

 

벚꽃을 보기 위해 쌍계사를 나도 가고 싶어진다. 아니 쌍계사에 가보지 않아도 나는 이미 시를 통하여 벚꽃놀이를 마친다. 눈처럼 떨어지는 벚꽃 아래에서 술 한 잔하고 싶어진다. 마음이 허하고 그리울 때면 나도 쌍계사를 찾아 며칠 밤을 지새우면서 벚꽃 길을 걷고 노닐고 싶다. 추억의 아름다운 빛깔을 가슴 속 가득 담아 오고 싶다.

 

꿈을 잃으면/희망도 없다/미래도 없다//날개를 달자/화려한 금빛 날개가 아니어도 좋다/비상을 꿈꾸자//성공하는 사람 뒤에는/자는 동안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따뜻한 웃음과 함께 한다//꿈을 잃지 않으면/나이가 들어도/언제나 청춘.       -사는 건 꿈이래(전문)

 

요즘 같은 불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업자는 넘쳐나고, 신용불량자에 자살자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남은 미래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사는 것이 꿈만은 아니지만, 어쩌면 꿈처럼 허무할 수도 있다.

 

삶의 멍에와 질곡에 겨워/온갖 풍상을 견디면서도/그래도 삶은 고결하고 아름답기에/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흔들리며 바람 부는 대로 물결따라 출렁이며/파도가 높아지면 온몸을 뒤흔들고//성난 물결 파도 위를 하염없이/저어가는 여정에/과거와 현재 내일이라는 미래를/가슴에 품고/현실의 바다가 너무 넓어/힘겨워 부서지려 해도//삶의 미로 수면으로 닿는 숨결이/자연과 인생과 우주를 향한/영원한 아름다움이고 싶기에/우리 삶의 작은 조각배는/오늘도, 쉬지 않고 노저어 간다.                     -삶은 조각배는(전문)

 

세상살이가 어떻게 보면 조각배를 타고 멀리 항해를 떠나는 어부의 모습 같다. 거친 파도를 만나기도 하고, 잔잔함에 지루함이 넘치는 경우도 있다. 내일을 알 수는 없지만, 간혹은 예고가 있기도 하고, 대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생 팔십의 긴 여정에서 나는 오늘도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도 보이지 않는.

 

연분홍 진달래가 곱게 핀 산자락에/울 엄니 가시던 날/하늘도 슬퍼 눈물비 내렸었지/열여덟 새색시 사대부집 며느리 되어/층층시하 시부모님 모시고/아래 식솔 거느리며/어려운 시집살이 숨도 크게 못 쉬면서/살으셨다지//뒤꼍 이끼 낀 바윗돌 위에/자식 위해 치성 드리시던/쪽진 머리 뒷모습이 그리도 고우시더니만/외롭고 허허로운 산정에 팔십평생 누이고 계실/울 엄니 앞에 서면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문에 먹칠하면 안 되는겨!"//봉분 위 보라색 제비꽃 하나/엎드려 절하는 내게 화사한 웃음 보낸다/울 엄니 웃음일까.     -울 엄니(전문)

 

아침, 새가 되신 할머님이 잠을 깨운다. "수종아! 오늘도 무사히." 울 엄니는 오늘도 나를 꾸짖는다. "가문에 먹칠하지 마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엄니의 모습을 보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살아계시는 동안은 그 분의 말씀과 행동에서 배우고, 돌아가신 다음에는 추억으로 기억으로 감응한다. 내 그리운 어머니가 오늘도 살아 계신 것에 감사드린다.

 

당신만 생각하면 왜 이토록/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이 올까요/우리 곁을 떠나가시던 날/손도 써 볼 겨를도 없이/병명도 모르는 채 운명을 달리하셨지요/어찌 할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고통스러워 소리치는 당신을/보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땅을 치며 통곡의 눈물을 흘리시던/그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새 중에 제일 큰 새는 먹새라고 하시며/그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얼마나 가슴속에 쌓인 한이 많았으면/속앓이가 되었을까요/지금처럼 의술과 교통이 발달한 시대였다면/그렇게 보내 드리지는 않았을 텐데/영화도, 효도도 받아 보지 못하시고/짧은 생을 살다 가신 내 아버지/지하에서라도 극락왕생 누리소서.  -사부곡(전문)

 

조선윤의 시에는 유독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많은 것 같다. 가슴 속 깊은 곳에 그리움과 사랑이 많기에 그를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급사한 부친의 모습과 그를 애통해하는 모친의 모습이 눈에 선한다. 나도 눈물이 난다. 짧은 생을 살다 가신 시인의 부친에게 나도 극락왕생을 빌어본다.

 

내 마음속 빛깔은/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희망 가득한 늘 푸른색이었으면 좋겠어/높고 큰 꿈을 갖고 자라는/늘 푸른 소나무처럼//삶을 살아도 언제나 변하지 않는/언제나 그 자리에서/하늘 높이 쭉쭉 뻗어 오르는/늘 푸른 소나무이고 싶어//거친 세월이 흘러도/변한 세월만큼/변화의 빠름과 크기만큼/치열한 자기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지만/결코 변해서는 안 될 것을/굳건히 지켜갈 수 있으니까.     -늘 푸른 소나무처럼(전문)

 

한국인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라고 한다. 사계절 푸른빛이 좋고 높이 자라는 기상이 아름다워 모두들 좋아한다. 아파트 인근에 심겨진 소나무에서부터 심산유곡에 있는 소나무까지 모두 좋다. 늘 푸름이 좋고, 높은 기상이 좋고, 당당함이 좋다. 굳건하게 자라다오 이 시대의 소나무들아!

 

세상에 태어나서/가는 길은 다르지만/만나고 헤어지는 만남 속에/스치는 인연도 있고/마음에 담아두는 인연도 있고/잊지 못할 인연도 있다//언제 어느 때 다시 만난다 하여도/다시 반기는 인연이 되어/서로가 아픔으로 외면하지 않기를.../인생길 가는 길에/아름다운 일만 기억되어/사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사랑하고 싶은 사람(전문)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인연의 큰 틀 속에서 보자면 마음의 교류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친화력도 중요하다. 소중한 인연을 잇는 노력과 사람됨은 더더욱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상대를 사랑하자!

 

핏빛 그리움이 토해 낸 선혈인가/돋아난 가시마저 아름다워라/가시에 몸 찢기우며 화려하게/피어나는 꽃 중의 꽃이여/꽃잎에 은구슬 또로록/함초롬이 싱싱하여 더 곱구나/잎새를 간질이는 하늬 바람결/어스름이 감추던 수줍은 사랑/품에 가득 담아 채워 놓고서/향기 피우는 순수한 진홍빛이여!/혼신을 다해 피우는 고운 자태에/트럼펫 음악에 왈츠를 보낸다/푸른 파노라마 속 운치의 거리/긴 침묵을 깨우는 정열의 장미여/사랑으로 불타는 붉은 심장처럼/고운빛 샤륵샤륵 흘러들어/안으로 몽롱하게 가슴 젖네/백합보다 더 은은한 향기로움이여!/아름다운 장미여!               -장미(전문)

 

대단한 은유와 의성어, 의태어의 조합이 돗보이는 시다. '꽃잎에 은구슬 또로록, 함초롬이, 잎새를 간질이는 하늬 바람결, 트럼펫 음악에 왈츠를 보낸다, 고운빛 샤륵샤륵, 몽롱하게 가슴 젖네' 아름다운 장미가 나에게로 와 의미가 되는 작품이다. 오늘 장미 한 송이를 사서 집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시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나도 어여쁜 꽃이 된다/마음은 활짝 개고/반하여 꽃이 된다/감미로운 기쁨으로 흘러/사랑으로 젖어들어/꽃마음이 된다//밝은 웃음 지으며/행복할 수 있도록/환하게 피어오르는/향기 발하는 예쁜 꽃/나 세상에 다시 온다면/고운 꽃이고 싶다/기쁨 주고 사랑받는/아름다운 꽃이고 싶다.     -꽃이고 싶다(전문)

 

아이의 미소와 아름다운 꽃은 누구에게나 웃음을 준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아이의 미소가 있는 곳에서 나는 꽃을 팔고 싶다. 꽃이 되고 싶다. 우울하고 슬픈 날이면 나는 꽃을 보면서 행복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 그림은 곧 행복지도가 된다. 나도 오늘 꽃이 되어 멀리 향기를 날리고 싶다.

 

<사는 건 꿈이래>를 쓴 시인 조선윤은 충북 보은 출신으로 <한맥문학>시부문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으며, 시와 수필을 주로 쓰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맥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