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앨범

2011.3.10. 김기택 시인 특강

예당 조선윤 2011. 3. 10. 19:25

 

 

 

 

 

 

 

 

 

 

 

 

 

 

 

 

 

 

 

 

 

 

 

 

 

 

 

1957년 안양출생

중앙대 영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1989,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꼽추" 당선

1992. 시집 "태아의 잠"

1994. "바늘 구먼 속의 폭풍"

1999."사무원"

2005. "소"

2009. "껌"

김수연 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상. 수상

 

 

20011,3월 맥심문학, 유심 아카데미에서 기다리던 김기택 시인의 특강이 있었다.

회장의 간단한 양력 소개가 끝난 후 강의는 시작 되고 ...

초롱한 눈망울들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메모한 것을 그대로 나열해본다

오늘의 강의는 참으로 감명 깊은 명강의였다.

 

화가 피카소에게 그림의 뜻하는바가 무엇인가 란 질문에 피카소 왈 뜻하는 것은 없다.

새들의 노래를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 듣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좋아서 하는 것이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위즈워스 시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성인은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하지만 아이는 그 순수대로 받아들인다.

어린이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어른이 배울점이다.

시인은 닫힌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를 향해 무한히 열려있는 말을 써야한다

 

나뭇가지를 꺾으면 어린이를 꺾는 것과 같다.

야자수 나무를 꺾으면 어머니를 죽이는 것과 같다

나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절대로 나무를 베지않는 나라도

나무에게 절을 한 후에 벤다.

 

'송진이나 수액을 나무의 피로 인식해 그걸 섭취한 후 나무를 베면

나무가 적어도 피를 나눈 형제에게 복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은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를 인용해 사람과 자연이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의식의 차이가  빚어낸 언어들이 신앙이 되고 지침이 된다

우주만물이 한 공동체라는 의식은 공존의 법칙을 만들어내고

동일성의 세계가 훼손된 후로는 생각의 차이가 도구가 되고 자원이 되어 전락했다.

 

시의 언어는 일상어 하고 어떻게 다른가?

시어는 어린이의 말과 닮았다

고대인들의 감수성을 그대로 타고난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순수성을 상실해간다.

훼손된 일상어를 느끼는 것은 혀가 하고 머리로 말한다.

생각과 관념만 들어있는 슬픔은 머리로 처리하고 관념이라서 마음의 감정 정서가 소요된다.

결론은 직접 체험으로 알 수 있다.

 

이 사회가 굴러가기 위한 말은 가상 세계다.

언어의 가상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가상 세계는 언어가 만들어 주었다.

우리의 몸은 자연이다. 자연과 함께 살면서 동일성이; 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

뇌를 제외한 몸은 원시인을 벗어나지 못한 불안이 생겨 다시 합쳐지고 싶은 강열한 욕구가

있어 정신분석적으로 실제 세계를 잃어 버렸다.

문명의 기술은 감각을 덜쓰게 해주고 있어 잃어버리고 있다.

 

현대는 사회적인 필요에 의한 언어만이 무성하다.

진정 자기를 위한 언어는 없다. 현대인의 말은 신의 피앙의 사슬이다.

의미를 상실한 기표만 있고 기의는 없다.

기표에 붙으려 하지만 자꾸만 미끌어져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체 무의식중에 진실이 들어난다.

말실수에도 무의식중에 들어난다. 근본적인 것을 잃으면 충족이 안된다.

느낌이 있는 세계 감촉이 있는 세계에 살고싶은 욕망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시적 언어는 의미나 개념을 전달하기보다는 느낌을 체험하게 하는 언어다.

시는 만질 수는 있고 말로는 못해야 된다.

시는 체험을 하게하는 것이다.머리는 이미 잃어버린 것을 기억한다.

풍부한 기억들이 저장되어 망각이 감추어져 있는 것은 눈의 시각이고 혀의 미각이고 손의 촉각이고

언어의 세계 속에는 속고 있다. 시는 잊고 있는 세계로 깨우는 역활을 한다.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슬픔이란 말을 버리면 감각으로 정서를 알게한다.

언어도 없고 문장도 없는 것을 만들어 쓰는 것이 시어다.

소외되었던 것을 충족 시켜주는 질감은 구체적인 소리없는 아우성이 들어있다.

 

단어의 개념으로 생각하지말고  추상적인 문장 조립이 필요하다. 시침이를 떼어버리면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시는 시침이를 떼어야한다. 획일화된 것이 아니고 고유한 경험에 이름을 붙혀주는 것이 정서를 자극하고 깨워 활동을 한다.

신선한 체험을 어떻게 살아있게 의미만 남게 표현 할 것인가

시는 어린와 고대인의 감각이다. 단어를 엉뚱하게 결합시켜서 자유로운 상상을 비틀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해야 하며

언어의 관습을 걷어내면 놀라운 세계를 구상할 수 있다.

숨어있는 정서를 새로운 이름으로 살리는 시 쓰기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내가 김기택 시인의 시 "껌"을 낭송한 시를 올려본다. 

 

껌 / 김기택

 

누군가 찝다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자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파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