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건달이 쓰는 것"
등단 52년째를 맞는 한국시단의 '거목' 신경림(73) 시인이 봄기운이 완연한 대학 캠퍼스에서
독자들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28일 오후 서울대 멀티미디어동에서 개최한 '신경림과 함께하는 낭독공감' 행사에서 시인은 100여명의 독자들과 함께 '낙타' 등 최근 대표시들을 읽으며 시에 대한 생각들을 나눴다.
처음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묻는 학생의 질문에 시인은 "시를 읽다보니 쓰고 싶어져서 썼고, 다른 것은 안 하고 시만 썼더니 시 쓰는 능력 밖에서 없어서 계속 시를 쓸 수 밖에 없었다"며 다소 '싱거운' 대답을 했다.
"50년을 넘게 써왔어도 아직도 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그는 그러나 "시인은 남들이 보고, 느끼고, 깨닫지 못하는 구석을 보고, 느끼고, 깨달아 전해주면서 사람들을 쓰다듬는 역할과 그 시대가 갖고 있는 정신이 무엇인지 밝히고 대답해주는 역할을 모두 갖고 있다"며 분명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이어 "시는 성인.군자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류에서 벗어난 '건달'들이 쓰는 것"이라며 "건달들은 세상을 모범생처럼 사는 사람들보다 세상의 어떤 면을 더 잘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을 묻는 질문에는 "한때는 '갈대' 같은 시는 안 쓰겠다고 결심했다가 지나고 보니 '갈대'가 너무 마음에 들고 또 어떤 때는 '농무' 같은 시는 더 안 써야지 했다가 또 마음이 바뀌는 등 때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갈ㆍ협박에 못 이겨 쓴 시, 가령 젊은 평론가들이 '이 시기에 노동시를 쓰지 않으면 시인도 아니다', '시인이라면 통일문제를 다뤄야한다'라는 식으로 함부로 얘기해서 마지 못해 쓰게된 시는 나중에도 애착이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근 출간된 열번째 시집 '낙타'에 수록된 '공룡, 호모사피엔스, 그리고…'를 읽으면서는 세계화나 실용적인 가치가 최우선이 된 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그들 중 몇이나 알고 있을까, 그들 또한 이전 존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 좀더 풍요롭고 편리하고 즐거운 세상을 위하여 마구잡이로 /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면서."('공룡, 호모사피엔스, 그리고…' 중)
시인은 "세계화가 모든 가치의 척도이고, 그것만이 세상을 구원해줄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한 반발로 이 시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중국과 같은 말을 써야한다고 주장했는데 만약 그 생각이 받아들여졌다면 우리나라는 몽골이나 티베트처럼 변두리 민족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며 "이 시를 살짝 과대포장하자면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반대의견을 밝힌 시라고도 볼 수 있다"며 웃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로 사회로 진행된 이날 낭독회에서는 영화배우 오지혜 씨가 맑은 목소리로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떠도는 자의 노래' 등 신경림 시인의 시를 함께 낭송했으며 독자들이 즉석에서 낭독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격월로 개최될 '낭독공감' 행사는 5월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 7월에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를 초청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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