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차를 마시며

예당 조선윤 2004. 12. 12. 09:21

차를 마시며 향기 듬뿍 담고 있는 커피 한잔을 마주 하고 있다. 청자 빛 다기 찻잔을 꺼내 정갈하게 닦고 따끈한 물을 넣어 한 잔의 차를 만들었다. 은근하게 풍겨오는 향내가 좋고 목젖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이 좋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따스한 분위기가좋다. 하늘이 머리끝에 닿고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는날 왠지 차한잔 앞에 놓고 생각의 사치를 부려보고 싶었다. 인생의 향기를 지닌 차(茶) 한 모금을 마신다. 명경지수 고요한 심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사의 내밀한 풍경속에서 마시는 차는 아닐지라도 생각의 깊이는 새벽녘 푸른 어둠에 쌓인 채 맑은 영혼을 담아내는 풍경 같다. 부라운 빛 따스함이 스며나온 향긋한 여운이 남는 맛을 음미하며 식어져간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채 우려내지도 못한 찻잎의 떫은맛 같던 젊은 날들이었다.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가고 끝 모를 시행 착오와 멈출 줄 모르고 불어대던 심상의 바람 세상을 향해 때로는 오만(傲慢)하던 날들이었다. 그런 치기어린 시간은 강물처럼 빨리도 흘러가 버리고 빈자의 가슴이된 삶이 머리끝에 희끗희끗 묻어나와 허허로운 마음이다. 자신의 깊고 옅은 상처까지 하나의 거짓됨 없이 다 보여주는 나무들 처럼 머리 끝에 앉은 세월을 보며 이제 비로소 타인을 보듯 나를 볼 수 있다. 온기를 잃어 가는 차 한모금을 마셨다. 입안에 감도는 차 맛이 담백하고 향긋한 깊이를 더 한다. 뜨거운 물 속에 하나의 찻잎을 띄워 깊은 맛을 우려내듯 내 삶 속에서 우려내는 것들을 글로 쓰고 싶은 계절이다. 생명이 꿈틀대는 엷은 초록 빛깔만큼 곱고 깊은 맛이 있는 글사유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명징한 사고를 담고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도자기를 굽듯 한편 한편 나를 굽어내는 글 비록 상처 나고 모양 또한 일그러질지라도 진솔한 내 모습을 보여주며 삶의 단편들을 담아내고 싶다. 결 고운 다기의 맑고 청아한 모습처럼 내 글들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 자극적이지 않고 감성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뒤끝이 깨끗한 글. 그런 글들을 쓰기 위해서는 끝임 없는 노력과 정성 끝에 한 점의 도자기가 탄생하듯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식지 않는한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른 풀잎을 적시는 안개 같은 글 속에 내 기울어 가는 삶의 그림자를 담아내며 나를 닦아가고 싶다. 어느덧 차 한 잔 비워지고, 싸늘하게 식어간 찻잔 속엔 내 삶의 앙금만이 남아 있다. 가만히 찻잔을 내려다본다. 작은 찻잔은 내 마음 담겨진 그릇 같다. 아직은 속이 얕아 깊은 것 많은 것 담아내지 못하는 그릇이다. 그러나 난 너무 속이 깊어 속내를 읽어낼 수 없는 그릇보다는 그저 둥글둥글한 항아리 같은 그릇이고 싶다. 장독대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하늘빛 한줌 담고, 내리는 빗물 담아 세상의 시름 바람에 날리며 띄워 내는 간장 항아리처럼 넘겨다보면 살짝 속이 보여 지는 그릇 밑이 얇을지라도 천박하지 않고 투박한 채로 쓰임을 다하는 항아리. 내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일상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글들이 특별한 감흥은 못 주더라도 울고 우는 하루를 잔잔히 우려낸 국화차 같은 맛이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지 못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는 그런 깨끗한 맛이었으면 한다. 아니 그런 글을 빚어내는 삶이길 소망한다. 어느덧 세월의 흔적이 선명한 나를 보며 세월을 마시고 삶을 마시고 있다. 오늘따라 차향이 더 맑고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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