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堂의 산문

철원 기행

예당 조선윤 2011. 11. 20. 14:25

 

 

한국문인협회 철원지부가 주최하는 이번 제9회 이태준 문학제는 상허선생 추모제례를 비롯한 살풀이공연, 철원문인협회와

민예총 강원지부, 한국문학예술 서울문학인 등 시화전도 펼치고 추모시 낭독과 문학기행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마련되었다.
한국 단편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상허 이태준은 1904년 11월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태어났으며,

1921년 서울 휘문고보에 입학해 21살 때 첫 작품 ‘물고기 이야기’를 교지에 발표했고, 이듬해 단편소설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 입선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상허 이태준은 단편소설 ‘산월이’를 비롯한 ‘고향’, ‘불우선생’, ‘달밤’,

‘가마귀’, ‘복덕방’등의 명작을 연달아 발표해 조선 단편소설의 완성자란 이름을 들었다.
이후 1947년 월북 후 ‘농토’, ‘고향길’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원은 38선에서 훨씬 더 위로 올라온 곳에 위치한다.

휴전선이 38선을 기반으로 해서 그어졌지만, 철원 부근에서는 한국전쟁 당시에 우리 군이 더 밀고 올라간 상태에서

휴전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철원이란 곳은 전에 북한 정권 하에 있었던 곳이다.

신탄리에서 화지리로 향하는 길목에 한 로터리가 있다. 왼쪽으로 가면 백마고지로 향하는 길,

직진하면 철원 노동당사로 향하는 길,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면 철원역으로 향하는 길이 있는 로터리다.


철원 노동당사는 서태지의 음반에 실린 동영상에서 거대한 태극기가 걸렸던 곳으로서 폐허가 된 건물을 통해서

분단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제대로 보호되고 있다.

지금은 사진과 같이 뼈대만 앙상한 잔해만 남아있고, 벽엔 총탄 자국이 수두룩하다.

오래 전에 갔을 때는 그냥 건물의 잔해만 남아있고, 그 3층 건물의 안까지 마음 대로 올라가 볼 수 있었는데,

언젠가 들러보니 그 때는 건물 주위에 철책이 둘러져 있었고, 야간 조명을 위한 시설이 되어 있었으며,

건물 내부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놨다. 그 근대문화유산에 흠을 내지 않고, 내부를 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계속 두면 무너질 것 같던 그 건물의 요소요소에 철 기둥을 세워 더 이상의 자연적인 붕괴를 막는 장치를 해 놓았다.

진작 그렇게 되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멋진 조치였다.

 

 

 

    비극의 다리 예당 조선윤 한탄강 협곡이 아름다워서 더욱 수려한 고색창연한 대한의 콰이강의 다리여 한탄강의 슬픈 역사만큼이나 남북분단의 비극을 간직하고 바라본 아치형은 한폭의 풍경화다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전쟁의 상채기를 더이상 지탱하기 힘겨운 것일까 남북분단의 상징처럼 설도 많아 갖가지 상념에 젖게한다 탄생의 비화처럼 갈라진 조국이 하나되어 승일공원 작은 정자에서 우리의 슬픈 현실을 이야기하며 남북이 함께 쉬어갈 날 언제 오려나 묵묵히 흐르는 한탄강아 말 좀 해다오

     

    이시는 승일교를 다녀와서 지은 시이다

    백마고지를 가는 길에 승일교를 지났다. 지금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을 만큼 낡은 다리이지만,

    2000년 경만 해도 구철원인 화지리쪽에서 신철원인 지포리 쪽으로 향하는 차들은 모두 그 다리를 통해 가야만 했다.

    그곳에는 이제 새로운 다리인 "한탄대교"가 바로 옆에 건설되어 승일교는 이제 그 역할을 다 한 채로 역사의 한 때를

    증거하고 있을 뿐이다. 승일교 아래로 한탄강이 흐르고 있고 다리 건너편에는 새로이 승일교 공원이 건립되어 있었다.


    승일교 이쪽 편에는 조그맣게 휴게 시설을 만들어 놓았고, 거기 승일교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걸 읽어보면서 전 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설명문에서 작은 역사 왜곡이 있음을 보았다.

    이 다리가 남과 북에 의해서 반씩 건립된 것은 맞지만 승일교란 이름이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을 합쳐서 지어진

    것이라는 얘기는 틀리다. 얘기는 그럴 듯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니 바로 잡아야하겠다.

    오래 전에 세워진 승일교 건립에 대한 취지문이 바로 승일교 표지석에 새겨져 있다. 박"승일" 대령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이 다리의 역사를 위의 휴게실 설명문에 엉뚱하게 써 놓아 사람들을 혼동시킬 필요도, 이유도 없겠다.


    이제 겨우 50여 년 전의 일인데 이런 작은 역사적인 기록에도 왜곡이라는 게 자리잡고 전설이란 건 그래서 생겨나는 듯하다.

    삼국사기 같은 정사가 아닌 삼국유사 같은 것이 생겨 전설을 역사의 일부처럼 기록하기도 하고, 또 정사에서 다루지 못 해

    기록이 사라진 고리를 복원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다만...

     


    백마고지는 6·25전쟁기간 동안 큰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본래 395고지라고 불렸으며,1952년 10월 국군,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열흘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며 심한 폭격으로 인해 산의 모습은

    사라졌다.위에서 바라보니 그 모습이 백마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백마고지로 불린다.
    이 전투로 백마고지전에 참전한 대한민국 9보병사단은 '백마부대'라는 별칭을 얻는다.
    백마고지 3용사인 강승우 중위,안영권 하사,오규봉 하사의 동상.이들은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최근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되었다.이 분들이 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 하는 것이다.

     

     

    백마고지 정상에서 보이는 북쪽의 풍경이다. 3.8선이 가로막혀 멀리서만 보아야하는 우리의 비극은

    언제나 끝이 나려나 한많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서 온 국민의 염원인 통일이 오기를 기다릴뿐이다.
    철새도래지인 철원 하늘을 쳐다보니 기러기가 떼지어 지나간다. 저 기러기에 실어 보내는 기원은 어떤 것일까?

     

    철원역사 내에는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의 폭격으로 망가진, 북으로 향하던 빨갛게 녹슨 기차가 있다.

    철원 노동당사 옆의 민통선을 지나 그 기차가 기념물로 보존된 철원역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이렇게 쓰여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그 철마는 거기서 민통선을 넘어 더 북으로 달리고 싶어하는 것이고 그런 기원이 철원역사 솟대에 담겨있다.

     

     

     

    기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보고 느끼며 분단의 아픔을 절실히 통감했던 하루였다.

    가을 해는 짧아 오지는 더구나 5시만 되어도 땅거미가 내린다.갈내음 물씬나는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한 날이였다.

    하루만에 철원을 다 돌아보기는 역부족이다. 아쉬움을 남긴채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철원 오대산 쌀을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철원의 정을 듬북안고 떠난다. 그리움으로 다시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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