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꽃
예당/조선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가 길어졌다. 작금의 100세 시대에 이 긴 노후를 어떻게 질 높은 삶으로 보람되게 보낼 것인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큰 과제가 되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은퇴 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이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멋있는 사람이고 싶고, 여전히 가슴 설레 이고 싶고,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 내 인생의 축제를 위해서, 활력 있는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내일의 보람을 위하여 홀가분한 마음으로 함께 참여하며 생의 활력이 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찾아보면 어느 곳에서나 많은 손길을 기다리니 할일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넘어야 할 산, 건너야할 강은 높디높고 깊고 깊지만 함께 어깨 걸어 부축해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은가. 지금 돌아보면 착한 자식으로 착한 아내로 또 자애로운 어머니로 사회의 일원으로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피멍이 들면서도 한결같이 올곧게 걸어왔다. 이제 한 숨을 돌려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는 것은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요, 인정받고 싶어서도 아니다. 스스로 원로라고 말하며 원로의 대접을 받고 싶어서도 아니다. 다만 지고 왔던 십자가, 넘어왔던 산, 건너 온 강, 숱하게 내 밀었던 손길 속에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장 비참하고 우울했던 패배의 나락에서조차 빛나는 영광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모든 것이 시작이 되고 끝이 되기 때문이다. 감히 또 다시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가기를 원한다. 절정을 향해 치달려나가는 그 순간에도 십자가를 군소리 없이 져야 하는 것이 바로 참길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길을 떠나야 할 때이다. 치열했던 삶의 기억은 새로운 다짐과 실천으로 이끌어 준다. 살아온 지난 세월의 기억과 다짐, 그리고 실천은 우리 모든 이에게 이 시대의 또 다른 성사가 되고 있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내 인생의 황금기로 만들어 소박한 사치는 사양하지 않겠다. 생물학적 한계를 느끼지만 가능한 사치는 죄일 수는 없다. 고로 내 인생의 절정은 끝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주목을 받는 생기 있는 청춘은 갔지만 조물주께서 고운 목소리를 주셨으니 감사로 소질을 길러 재능 기부도 하며 특별한 감성을 주셨으니 틈틈이 글을 쓰며 내 인생에 세권의 책을 내려고 한다. 이미 두 권은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한 권 정도야 마음먹기에 따라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내 인생의 찬란한 날들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산다는 애착에서 차츰 마음이 비워져 여유가 생기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남아있는 여정을 이젠 사회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는가? 지금도 내 삶의 축제를 준비하며 인생의 꽃을 피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