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전망대와 월정역 / 藝堂
월정리 전망대에는 설명을 자세히 머리에 쏙쏙 박히게 해준다.
백마고지와 피의 능선 김일성고지... 궁예궁터 ,낙타고지, 서방산,
평강 등에 대한
지형 설명과 대략적인 역사를 듣노라면 마치 그때가 떠오르는 듯 하다
전망대 바로 뒤에는 월정리 역사가 복원되어 있는데 경원선 월정리 역사의 원래 위치는
비무장지대지대 철책 바로 안에 있어 약200미터
후방에 복원한 것입니다.
철도 중단점을 보면서 경의선과 동해선은 남북을 잇기위해 한참 공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 이 철도만은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며 남북이 이어질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월정리를 떠나 다시 민통선 밖으로 나가는 길에는 제사공장, 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등의 터와 잔해가 보인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여기까지가
민통선 일정이 되고 바로 앞 노동당사부터는 자유 관람이 가능하다
노동당사는 옛날 KBS의 열린 음악회도
열렸었는데 벽에 낙서나 무차별 훼손을 막기 위해
이제 보호 철책 안에 갇혀 버린 신세가 되었다.
이곳에서 약 10여분 이동하면 도피안사... 또 다른 방면으로는 백마고지가 있다.
도피안사는 피안에 이르는 절집이라는 이름만큼이나
큰 기대했는데 이곳도 중창불사에
여념이 없다. 대적광전 바로 앞 이형 삼층석탑과 전각 안의 비로자나철불 만이
변해 가는 도피안사를
지킬 뿐이다.
다시 찾은 철원의 민통선... 십년 세월은 변했지만 분단의 현실과 민통선은
변한 게 없다 언제 우리의 소원인 통일의
물꼬가 터져 우리가 가지 못하고
그저 설명으로만 듣는 철원 전망대 앞 태봉국 궁예의 궁궐터에 마음대로 가서
답사할 수 있는 그
날이 언제나 올 수 있을까
삼거리에서 통일전망대쪽으로 가다 보면 곳곳에 대전차 방어물과 지뢰밭 등 군사
시설물들이 널려 있어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으로 바라보면 멀리 봉우리가
날아간 작은 산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원래 이름은 '삽술봉'이었는데 철의 삼각지 전투때 폭격을 하도 많이 맞아 산봉우리가
녹아 버렸다는 '아이스크림 고지'이다. 미 공군
비행사가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남의 나라 강토를 파괴하면서 마치 오락하는 듯한 기분으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니 마치
능욕당한 기분이다.
어디 그뿐이랴. 어딘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선부근에는 여자 유방을 닮은 고지가
하나 있는데 미군들은 그 고지를 '진
러셀 고지'라 불렀다 한다.
진 러셀은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한 육체파 배우였는데 전투과정에서 그 고지가 파괴되자
절벽같은 가슴으로
유명했던 캐서린 햅번이라는 배우의 이름을 따서
'캐서린 햅번 고지'라고 불렀다.
국토의 지형까지 이렇게 바꿔 놓은 격렬한 전투를 생각하면서 가다 보면
통일전망대가 나타난다.
통일전망대는 철책선 앞에 성벽처럼 길게 쌓아올린 장벽 한 가운데 있는 3층 건물이다.
2층에 올라서서 보면 철책선과
비무장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유리창 앞에 서서 저 흉칙한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우리 민족사에 가지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해 깨달아 가면서 나는 철책선이 50여 년간의
오랜 세월을 흐르면서 민족간의 분열과 증오, 적대의식의 상징물로
우리들의 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왔음을 깊이 자각하게 되었다.
군사정권은 지속적인 반공교육으로 철책선을 통해 환기되는 긴장과 적대의식을
우리의 생활속에 깊이 침투시켜 왔다.
그 결과 철책선은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일상생활, 우리의 마음속에
그어진 견고한 구조물이 되었다.
이제 그 철책선 앞에 다시 서니 민족적 잠재력을 심각하게 갉아먹는 불필요한 대립과
증오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9년 문익환목사와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분단 50주년을 넘기지 말고 기필코 민족의 통일을 이루자고 다짐한 바
있는데 올해가
바로 그해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김주석과 김영삼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어 진정 통일을 향한
돌파구가 열릴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김주석 사망이후 남한 당국의 미숙한 대응으로
남북 당국간의 통일 논의 창구는 꽁꽁 얼어있다.
그러나 문익환목사가 '통일은 됐어!'라고 외친 것처럼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인위적인 철조망이 사라지고 통일을 향한 의지가
솟구치고 있다. 이는 민중운동의
성장과 동시에 진행되어 온 민족적 자각의 결과이다.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우리는 상당한 정치 경제 군사적인 힘을 가진 국가가 될 것이며
민족간의 대립과 증오를 위해 쓰이던 천문학적인
국방비가 복지비용으로 전환되어 민족의
생활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신문을 보니 내년에 미국에서 18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무기를 수입한다는데 이는
내년 미국 무기 수출액의 20%에 해당하는
것이라 한다. 왜 이렇게 민족의 재부를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인가
통일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있어서 500원을 넣으면 망원경을 통해 휴전선 일대와 북녁의
산하를 살펴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북한쪽에서 설치한 '자주', '평화'라는
구호판이 보이는데 그 일대가 궁예궁터가 있던 곳이다.
궁예궁터는 남문터가 통일전망대 바로 앞쪽에 있었고 고암산 밑에 궁궐이 있었던
평지성이었는데 지금은 비무장지대 정가운데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그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갇힌 궁예의 꿈, 민중의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까치와 까마귀가 많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휴전선
일대에는 까치집이 제법
많았다. 저 까치처럼 우리민족이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기를 염원하면서 통일전망대를 내려왔다.
통일전망대를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월정리 역이 보인다.
작고 소박하여 옛날 역건물의 향수를 느끼면서 안으로 들어가자
부숴진 기차가 보인다.
원래는 인민군의 보급열차였는데 미군의 폭격을 받아 저렇게 되었다고 한다.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글귀가 있다. 아마 이 글귀만큼 많이 알려진 구호도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통일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마다 부숴진 기차와 함께
사진으로 보아 왔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 구호는 알게 모르게 우리로 하여금 남한 중심의 사고, 즉 기차가 북쪽으로 달리지
못하는 국토의 분단이 의미하는 민족적 긴장과
비극의 책임이 모조리 북쪽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우리는 달리고 싶은데, 통일을 하고 싶은데 한쪽이 그것을 막고
있다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단의 책임이 어디 북쪽에게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한 정부도 책임이 있고, 분단과 그 유지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미국, 일본 등
강대국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북쪽에 들씌우려는 것은
사실에 반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미지 조작은 너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6.25의 경우도 남한에서는 주로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전쟁 책임론만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 어느 전쟁을 막론하고 전쟁 책임소재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따지는 나라는
없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났던 사실보다는 전쟁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해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남북은 서로 무력통일론을
제기하고
있었고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로 싸우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간에 누가 먼저 때렸냐는 것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특히 당시 남한의 경우 친일잔재가 청산되기는 커녕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고,
토지개혁을 진행하지 못함으로 해서 상당수의
가난한 남한 농민들이 인민군을
지지했던 상황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제 6.25전쟁을 민중들의 지향과
요구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며 이럴때만이 한쪽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비합리적
사고를 극복하고 민족간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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