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2편 만리장성 / 藝堂
모닝콜 벨소리에 잠이깨여
중국의 새아침 2일째날을 맞았다
피곤에 지쳐 일어나지 못하는 딸을 힘들게 깨워
아침준비를 시켰다
8층 부페식당에서 준비된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반에 관광차에 일행은 몸을 실었다
도시전체가 박물관이라 일컬러지는
3천년 역사의 고도이며 중국 북부의 위치에 있는
북경을 뒤로하고 오늘의 첫코스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중국의 정치. 행정. 문화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내려온 만리장성.
볼거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궁무진한 관광지에 매력을 느낀다
추울까봐 걱정했던 날씨도 우리나라의
가을날씨같은 청명한 하늘에 포근하고 너무 좋았다
즐겁고 좋은 일정이 되라는 하늘의 축복인것 같았다
北京에 가서 만리장성을 구경하는 사람 가운데
열에 아홉은 八達嶺 만리장성을 보게 된다.
북경에서 가깝고 관공지로서 잘 개발된 곳이기 때문이다.
만리장성의 성벽의 규모는 일정치 않다.
팔달령 부근의 성벽은 대체로 높이가 7.8m, 폭은
바닥이 6.5m, 위가 5.8m 정도이다.
팓달령의 성벽은 왼쪽보다 오른쪽이
경사가 심하지 않아 오르기가 편하다.
그러나 큰 차이는 없고, 풍경을 즐기기에는 왼족이 낫다.
양쪽을 다 올라 보는 것이 좋다.
만리장성은 춘추시대부터 여러 나라에 의해 구축되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북변에 구축했던 성을
증축 개축하여, 인산(陰山)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뻗어
랴오양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함으로써 흉노(匈奴)를 방어했다.
오늘날의 허난성(河南省)·산시성(山西省) 경계 북부를
타이항 산맥(太行山脈)을 따라 남하하는 장성도
북주(北周) 방어대책으로 그 무렵에 축조된 것인듯하다.
당대(唐代)에 들어서 북쪽까지 판도를 넓혔기 때문에
방어선으로서의 장성이 필요하지 않았고
오대(五代) 이후에는 장성지대가 북방민족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방치되었다.
비단 축조뿐만이 아니라 성곽이 흘러든다.
문득 만리장성에 바치는 모든 풍광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만리장성은 중국 고대의 최고의 장성이었으며,
"만리장성"이라는 명칭은...
맹강녀의 고사 (만리장성) 맹강녀(孟姜女)의 고사가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다
북으로부터 흉족들이 처들어올것을 방비하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서
건너다보게 되는 만리장성은 묘한 긴장감과 흥분을 가져다준다
약 400m에 달해서 만리장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한다
걸어서 올라가고팠던 것을
이루지못한것이 못내 아쉽다
다음코스는 비경 용경협으로 향했다
재미없는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지 않으려다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지않을까 싶어 올립니다